우리는 일이 없는 삶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지만 일과 내 삶을 동일시하고 싶진 않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싶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모든 것을 나누고 싶진 않다. 우리는 놀듯이 일하고 싶지만 놀이 대신 일을 하고 싶진 않다. 이 사이 어디쯤에서 내가 원하는 일의 방식을 규정하는 것, 자신에게 좋은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그것이 일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우리의 고민을 원점으로 돌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대체 일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무엇을 일이라 부를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행복하게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답할 수 없지 않을까?

(…)

 일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일을 이루는 활동, 일이 낳는 결과와 함께 일이 놓인 차원과 일을 통해 형성되는 국면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라는 문제를 훨씬 더 정교하게 구성하게 된다. 무슨 일을 어디서 누구와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재미있는 일을 원한다면 나는 어떤 것에서 가장 큰 재미를 느끼는가? 나는 어떤 상황을 가장 견딜 수 없어 하는가? 돈을 벌어야 한다면 얼마를 벌어야 하는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째서 그것을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가?
 현실이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 닥칠 현실은 지금보다 더 나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생각보다 많은 선택권이 있다. 다만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일을 고민할 때, 내 욕망들 사이의 우선순위를 이해할 때, 그때만 우리는 일의 다른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해답은 사표일 수도, 전직이나 이직일 수도, 창업일 수도, 부업일 수도 있다. 물론 현재의 자리가 최선이라는 답이 나올 수도 있다. 당분간 지금 자리에 머물며 준비할 것의 목록을 답으로 얻을 수도 있다. 그 해답은 우리의 일을 재구성할 것이고, 일이 재구성되면 필연적으로 삶이, 삶이 놓인 관계망이 재편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일하기 싫다'고 말하지만 싫은 것은 대개 일 자체라기보다 일이 놓인 조건이다. 그저 싫다, 괴롭다 토로하는 대신 정확히 어떤 부분이 싫은지 구체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거기서부터 무엇이든 하나씩 지금과는 '다르게’ 해보아야 비로소 실마리가 드러난다. 이미연은 큰 조직에 속하기 싫다는 조건에서 출발했다. 유라는 산골에서 살아야겠다는 조건에서 출발했다. 장은성은 작은 규모에 맞는 출판이라는 화두를 붙잡았다. 이들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욕망이 무엇인지 이해했고,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았기에 그들은 기꺼이 '다르게 사는’ 비용을 치를 수 있었다. 그 덕에 그들은 일의 주인 자리에 뚜벅뚜벅 오를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이 완벽히 행복할 리는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그럼에도 조금 더 행복하게 일하고 싶다면 할 수 있는 데서부터 하나씩 다르게 시도해볼 수밖에. 그렇게 나아갈 뿐이다.

제현주.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어크로스, 2014. pp.36, pp.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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