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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

@engiyong / blog.engiyong.net

Mixer, engineer, The Hitchhiker to the Gala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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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필요에 의해서만 마시는 편이었는데. 지난 1년간 다닌 회사에서 일주일에 한번씩은 술을 마신거 같다. 뭐 그래봐야 소주 1-2잔 혹은 소맥, 가볍게는 맥주 한 잔씩 말이다.

하지만 오늘 나에 대해서 새로운 것을 알았다.

인사 총괄 이사님이랑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처음으로)소주만 독대로 마셨는데, 무려!!! 소주 2병을 나 혼자 깠다. (…) 그런데 취하질 않는다.

세상에나… 내가 이렇게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었다니, 놀랍다. 그리고 퇴사에 대한 것은 반려 당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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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31

최근 2주간 깊은 잠을 자지 못 하고 있다. 꿈 속에서 무엇인가에 끊임없이 시달리다가 축축해진 베게에 얼굴이 파묻힌채 눈이 떠진다.

슬픈 일도 힘든 일도 없는데, 왜 꿈은 그렇지 못 한가? 꿈에서 깨어나면 한참을 멍하니 있게된다. 꿈 속에서 있었던 일들을 한 장면 한 장면 곱씹으며 의미를 찾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흩어지는 모래들 처럼 머리속에 있던 꿈의 형태는 사라져 버린다.

언제쯤 다시 편하게 잠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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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이 자꾸 싸우고 나뉘는 것이, “진보” 자체의 성향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수진영이야 암묵적으로 어느부분 합의된 것들이 있고 이것에 대해선 서로 눈짓만으로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라는 것은 사람들마다 바라보는 방향이 다 다르고 합의점이라는 것 또한 각자의 시선에 따라 중요도가 다르다보니 생기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 진보의 합의점은 어디일까?

동의를 많이 얻어 힘을 받은 사안만이 합의점이 되고 변화의 시작 지점이 되지 않을까? 그러니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대의를 보아야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앞서 말한 진보 진영 사람들의 성향을 벗어나기 때문에 결국은 해결점이 안될려나?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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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잘 살고 있는거지?”

라고 묻는 너의 말에 쉽게 답을 해주지 못 했다. ‘이제 그만 잊고 더 이상 너를 망치지 않는다면, 잘 사는거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뱉어내지 못 했다. 이 말이 너를 위로하지도 깨우쳐주지도 못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사람이 잊혀지는 것은 다른 사랑이 덧칠해질 때가 아닌 그 자국이 찢어져 사라질 때인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만큼 깊게 새겨진 마음은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니 네가 잘 사는거냐고 물어도 나는 답을 해줄 수 없었다.

시간이 남겨진 흉터를 태워버리고 더 이상 탈 것이 없어질 때, 나는 너에게 “요즘 어때?” 라고 물을 것이다. 그리곤 그 시간동안 아픔과 슬픔을 견디느라 정말 고생했을 너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싶다.

“잘 견뎌냈어, 이제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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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 세계가 선언한 새해에서 한달여 떨어져 새로운 새해를 외치는 날에 나도 새로운 방식을 도전해보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선만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쓴 것을 빌려왔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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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들은 살아있을까? 라는 생각을 문득했다. 수많은 명문들은 단 하나의 문장만으로 살아움직이고 힘을 담아내고 있다. 나야 그런 글이나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갑자기 그런 이들의 글이 부럽고 나의 글들은 부끄러워진다.

내 글에도 생기를 불어넣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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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5

오래간만에 날짜를 남기는 포스팅이다. 날짜가 남는다는 것은 대부분 일기 혹은 이날의 푸념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몇 일전으로 거슬어 올라가, 여전히 업무는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것이 중요하니 이것을 먼저 처리해달라’ 소리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고 각자의 중요성은 전체를 봤을때 매우 사소한 것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견은 무시해버린다.

그런데,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매우 큰 스트레스로 찾아온다. 스트레스가 쌓이다보면 풀어내지 못 하고 스스로 폭발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어딘가 풀어야하는데, 마땅한 것도 없다. 그렇게 몇일전 갑자기 폭발해버렸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있지?’ 라는 생각부터, ‘그냥 조용히 살고 싶다.’라는 생각들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많은 경우 이럴 때는 결국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은 흘러가게 되어있다. 브레이크도 없고, 생각을 전환시켜 줄 마땅한 이벤트도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은 ‘죽음’이다. ‘모든 것에 지쳐서 그냥 편안하고 싶다.’, ‘누구의 목소리도 듣지 않고 그냥 조용히 누워있고 싶다.’, ‘심지어 이러한 생각들조차 멈추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들면,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진다. 또한 공포가 찾아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과 진짜로 실행하면 어떻게 될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이다. 그리곤 공포는 눈물이 되고, 두려움은 소리가 되어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쏟아내고나면 괜찮아진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살아간다. 이렇게 나의 삶은 이어져간다.

어니스트 베커는 [죽음의 부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삶을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어떤 형태를 띨지, 우리의 고통스러운 탐색에서 어떤 쓰임새를 찾아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언가 - 대상이나 우리자신 - 를 만들어 내어 혼란에 빠뜨리고 그것을 (말하자면) 생명력에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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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충전 케이블이 없어서 방치되어있던(사실 아이폰 이후 방치되어버린) 아이팟을 다시 살려냈다. 그때 마지막으로 듣던 플레이리스트도 그대로 남아 있다보니,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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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을 때, 어떻게 우는지 잊어버린거 같다.

꺼이 꺼이 울었던가?

흐앙 흐앙 울었던가?

그저 힘들다고 짜증을 내는게 할 수 있는 표현의 전부라니 이렇게 한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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