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5, 2022
양산형 애국가

리히텐슈타인: 안녕 스위스, 나 새 애국가 만들었어!

스위스: 어, 근데 그건 내 애국가에 그냥 가사만 바꾼 거잖아.

리히텐슈타인: 알아, 하지만 공식적인 애국가고 바꾸기엔 너무 늦었어.

스위스: 뭐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지?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도 같은 곡을 쓰잖아?

리히텐슈타인: 그래서, 이 곡조를 너만 쓰고 있다고 확신해?

스위스: 물론이지. 근데 그건 왜 물어?

리히텐슈타인: 아, 아냐…

범용 직렬 버스(Universal Serial Bus, USB) 가 아니라 범용 군주국 국가(Universal Monarchist Anthem, UMA). 현재 영국의 애국가로 유명한 ‘God Save the King (Queen)’은 원전이 불분명한 곡이다. 대충 비슷한 멜로디가 17-18세기 어느 순간에 생겨난 것까지는 알려져 있는데 정확히 작곡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 애시당초 저 시기는 지금같은 작가(혹은 저작권) 개념이 없어서 같은 소재를 여러 극작가들이 돌려 쓰거나, 멜로디를 변형해서 쓰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셰익스피어 연극도 판본이 수십 개라고 하니 이 곡만 유별난 게 아닌 셈. 어쨌거나 이 곡은 19세기 이후 많은 나라에서 왕실 찬가(=애국가)로 사용되었으며 덕분에 지금도 상당히 많은 나라에서 애국가 노릇을 한다. 여기 나온 것처럼 리히텐슈타인의 애국가도 곡조가 같기 때문에 축구 대회 같은 데서 잉글랜드 팀과 리히텐슈타인 팀이 맞붙으면 같은 곡조가 두 번 연주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애국가를 공유한다니 '국가'와 '민족’ (혹은 '종족’)을 구분하지 않는 한국 사람 눈에는 이상해 보이지만, 우랄 핀족의 나라인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도 애국가를 공유한다. 괜히 이 둘이 폴란드볼에서 세트 취급 받는 게 아닌 것.

스위스의 경우 1961까지 이 곡조를 애국가로 사용하다가 현행으로 바꿨다. 마지막 컷([5])을 기준으로, 왼쪽 위에서부터 하나씩 살펴보면: